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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반상과 양천 - 2017년 6월 고1 모고

여기가로두스 2021. 7. 30. 15:50

20176월 고1 모고 김돈 외, 노비를 줄이고 양인을 늘리다 반상과 양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고려 말 중앙 집권 체제의 약화와 왕권의 쇠퇴 속에서 조선 왕조를 세운 신흥 사대부들은 지주층이었기 때문에 노비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은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을 위해 국역(國役)* 대상인 양인 계층의 폭을 넓히려 하였다. 따라서 노비가 꼭 있어야 하더라도 되도록 양인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것이 새 왕조가 추구한 국역 정책의 기본 방향이었다.

이처럼 국역 대상의 확보를 새 왕조 통치 체제의 발판으로 추구하면서, 법제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을 일단 양인천인으로 나누었다. 이들 사이에는 의무와 권리에서 차등이 있었는데 먼저 의무 면에서 양인 남자는 국역인 군역(軍役)과 요역(徭役)*의 의무가 있었다. 이에 비해 천인은 군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권리 면에서 양인과 천인은 신체와 생명의 보호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공권력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지에서 뚜렷이 차이가 났다. 천인인 노비는 재산으로 보아 매매상속양도증여의 대상이 되었으며, 사는 곳을 옮길 자유가 없었다. 노비와 양인이 싸우면 노비가 한 등급 더 무거운 벌을 받는 것은 양천 사이의 법적 지위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보다 권리 면에서 양천의 가장 분명한 차이는 관직 진출권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양인 중에도 관직 진출권이 제한된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양인은 일단 관직 진출권이 있었다. 더러 노비가 국가에 큰 공로를 세워 정규 관직인 유품직(流品職)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때는 반드시 양인이 되는 종량(從良) 절차를 먼저 밟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천 구분은 국가의 법적 구분이었지, 실제 사회 구성은 좀 더 복잡했다. 천이라는 법적 구분 아래 사회 구성원은 상급 신분층인 양반 계층, 의관역관과 같은 기술관이나 서얼등의 중인 계층, 양인 중 수가 가장 많았던 평민 계층, 노비가 주류인 천민 계층으로 나뉘었다.

조선을 양반 관료 사회라고 규정하듯이 양반은 정치사회경제 면에서 갖가지 특권과 명예를 독점적으로 누리면서 그 아래인 중인평민천민과는 격을 달리했다. 이를 반상(班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반상은 곧 신분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눈 것으로서, 반상의 반()에는 중인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상()에는 평민부터 노비까지 포함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법적 구분과는 달리 사회 통념상으로 최고 신분인 양반의 지배자적 위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식에서 생겼다고 하겠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법적 규범인 양천제와 당시 실제 계급 관계를 반영한 사회 통념상 구분인 반상제가 서로 섞여 중세의 신분 구조를 이루었다. 중세 사회가 발전하면서 신분 구조는 양천제라는 법제적 틀에서 차츰 사회 통념상의 신분 규범이 규정 요소로 확고히 자리 잡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는 지주제의 확대와 발전, 그리고 조선 사회의 안정과 변동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국역: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지우던 부역.

*요역: 나라에서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남자에게 관아의 임무 대신 시키던 노동.

1.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중인은 반상제에서 에 포함되지 않았다.

양인 가운데 평민층의 수가 양반층의 수보다 더 많았다.

조선 시대 사회 구성원은 사회 통념상 네 계층으로 나뉘었다.

지주제의 확대와 발전은 양천제에서 반상제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조선의 국역 정책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노비의 수를 최대한 늘리는 것을 우선시하였다.

 

2.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모두 군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② ㉡과 달리 관직 진출권이 원칙적으로 없었다.

③ ㉡이 국가에 큰 공을 세울 경우 이 될 수 있었다.

④ ㉠은 법적 지위 면에서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⑤ ㉡에 속하는 노비는 마음대로 거주지를 옮길 수 없었다.

 

3. ‘채수의 견해를 윗글과 관련 지어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

사헌부 대사헌 채수가 아뢰었다. “어제 전지*를 보니 역관, 의관을 권장하고 장려하고자 능통하고 재주가 있는 자는 동서 양반에 발탁하여 쓰라고 특별히 명령하셨다니 듣고 놀랐습니다. 무릇 벼슬에는 높고 낮은 것이 있고 직책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습니다. 의관, 역관은 사대부 반열에 낄 수 없습니다. 의관, 역관 무리는 모두 미천한 계급 출신으로 사족(士族)이 아닙니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전지: 상벌(賞罰)에 관한 임금의 명()을 그 맡은 관아에 전달하던 일.

벼슬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직책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다고 한 것은 당시 모든 사회 구성원을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려는 의도로 볼 수 있군.

의관, 역관 무리는 모두 미천한 계급 출신으로 사족이 아니라고 한 것은 국가의 법적 규범인 양천제가 흔들릴 것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군.

의관, 역관과 같은 중인을 동서 양반에 발탁하려는 임금의 조치에 반대하는 것은 양반의 지배자적 위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겠군.

기술직을 권장하는 대책을 세우고 시행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은 양반들이 누려온 독점적 권력이 중인에게 집중될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아야겠군.

재주가 있는 자를 양반에 발탁하도록 한 임금의 명령에 놀라움을 드러낸 것은 신분에 따라 공권력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시각차를 보여주는군.

 

정답: 5 1 3

김돈 외, 노비를 줄이고 양인을 늘리다 반상과 양천

이 글은 조선 전기 사회의 신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신흥 사대부들은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을 추구하면서 노비를 줄이고 양인을 늘리는 것을 조선의 국역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조선 시대 신분 제도는 법적으로는 양천제를, 사회 통념상으로는 반상제가 서로 혼재된 구조였다. 조선 사회는 차츰 양천제라는 법제적 틀에서 사회 통념상의 신분 규범이 규정 요소로서 확고히 자리 잡는 방향으로 변화해 갔다.

 

세부 정보 파악하기

글의 세부 정보를 파악하여 적절하지 않은 내용을 찾는 문제이다. 1문단에서 조선의 국역 정책의 기본 방향은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을 위해 양인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노동력 확보를 위해 노비의 수를 늘리는 것을 우선시하였다고 이해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답 넘기

4문단에서 양인 중 수가 가장 많았던 평민 계층이라는 표현을 통해 양인 가운데 평민층의 수가 양반층의 수보다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4문단을 통해 조선 사회의 구성원은 사회 통념상 양반, 중인, 평민, 천민(노비) 네 부류로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정보 간의 관계 파악하기

2문단에서 소개한 양인천인의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하지 않은 내용을 찾는 문제이다. 의 남자만 군역의 의무가 있었으므로 모두 군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고 한 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오답 넘기

② ㉠ 중에서도 관직 진출권이 제한된 사람이 있었으나, 과 달리 은 원칙적으로 관직 진출권이 있었다.

③ ㉡에 속하는 노비가 국가에 큰 공을 세운 경우, 종량 절차를 거쳐 이 될 수 있었다.

 

추론적으로 이해하기

지문의 내용과 사료(史料)에 나타난 견해를 파악한 후에 이 둘을 연결하여 추론하는 문제이다. 문헌의 내용을 통해 채수는 기술직의 중인을 양반에 발탁하려는 임금의 명령에 반대하고 있다. 윗글과 연결 지어 이해한다면 이러한 채수의 견해에는 양반의 지배자적 위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오답 넘기

, , 모두 채수의 견해에서 양반의 중인에 대한 시각이 나타난 표현을 윗글에서는 양인과 천민 사이의 관계와 연관 지어 추론하였으므로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채수기술직을 권장하는 대책을 세우고 시행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은 지금까지 양반들이 누려온 독점적 권력을 중인과 나누어 가져야 할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6월 고1 모고 역사 반상과 양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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