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국어 자료/고2 국어(출판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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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로두스 2015. 11. 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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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참고하시고, 내용은 위의 파일 참고하세요^^*



연군의 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가사 작품으로, 가사는 한국 문학의 가장 독특한 갈래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해 보자.

 

01 속미인곡(續美人曲)

정철(鄭澈)

* : 저기에.

* : 옥황상제가 있다고 하는 곳.

* : 사설(辭說). 이야기.

* 괴얌즉: 사랑받음직.

* : 군 뜻이. 다른 생각이.

* : 아양이야. 재롱이야.

* 러이: 어지럽게.

* 혜여: 헤아려 보니.

* 플텨 헤니: 풀어 생각하니.

* : 조물주.

* 글란: 그것일랑.

경을 ~ 보라 가시.: 임금이 계시는 서울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가 다 져서 저물었는데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가? 임금의 충신으로 일하다가 이제는 물러나 은거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갑녀(甲女)로 하여금 질문하여 나타냄.

나도 님을 미더 ~ 엇디 다신고.: 나도 임을 믿어 딴생각이 전혀 없어, 응석과 아양을 부리며 귀찮게 굴었던지 반가워하는 낯빛이 옛날과 어찌 다르신가?

뎨 가뎌 각시 본 듯도 뎌이고.

경을 엇디,

다 뎌 져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

어와 네여이고 내 셜 드러 보오.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가마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

나도 님을 미더 군디 전혀 업서

야 교야 어러이 구돗

반기시 비치 녜와 엇디 다신고.

누어 고 니러 안자 혜여

내 몸의 지은 죄 뫼혀시니

히라 원망며 사이라 허믈.

셜워 플텨 혜니 믈의 타시로다.

글란 각 마오. 친 일이 이셔이다.

* : 봄 추위와 여름 더위.

* : 가을과 겨울의 날씨.

* 셕 뫼: 진지.

* 셰시: 잡수시는가.

* 님다히: 임 계시는 곳. ‘다히는 편, .

* 아므려나: 어떻게든지.

 얼굴이 편실 적 몃 날일고.: 물과 같이 연약한 몸이 편하실 적이 몇 날일까? 임을 염려하는 충정(忠情)이 깃들어 있는 표현임.

구롬은니와 안개일고.: 구름은 물론이거니와 안개는 또 무슨 일로 저렇게 끼어 있는가? 산에 올라가서 임의 소식을 알고 싶어 하는 심정을 나타낸 표현으로, ‘구름안개는 당시 조정을 어지럽게 하는 간신들을 상징한 말.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 얼굴이 편실 적 몃 날일고.

열은 엇디야 디내시며

쳔은 뉘라셔 뫼셧.

셕 뫼 녜와 티 셰시.

기나긴 밤의 은 엇디 자시.

님다히 식을 아므려나 아쟈

도 거의로다. 일이나 사올가.

 업다. 어드러로 가쟛 말고.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올라가니

구롬은니와 안개일고.

쳔이 어둡거니 월을 엇디 보며

쳑을 모거든  라보랴.

하리 믈의 가 길히나 보쟈

 

 

 

 

|참고| 송강 가사에 대한 김만중의 평가

송강의 관동별곡(關東別曲)’전후미인가(前後美人歌)’는 우리나라의 이소(離騷; 중국 초나라 굴원이 참소를 입어 임금에게서 쫓겨난 뒤 나라를 근심하여 노래한 것)이다. 한문으로는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인(樂人) 등이 입으로 전수하거나 국문으로만 전한다. (중략)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詩文)은 자기 말을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입내 내어 쓴 것이니, 설령 아주 비슷하다 해도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여항(閭巷)에서 나무하는 아이들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에야 데야 하며 서로 화답하며 노래하는 것이 비록 비리(鄙俚)하다 할지 모르나 그 참과 거짓됨을 따진다면 학사대부(學士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 따위와 같이 논할 수가 없다. 하물며 이 세 별곡(別曲)은 천기(天機; 하늘로부터 받은 그대로의 본성)가 절로 발로되어 있고, 야만적인 풍속의 천박함이 없으니,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참 문장은 오직 이 세 편이다. 그러나 세 편을 논하면, ‘후미인(後美人)’이 더욱 높다. ‘관동전미인(前美人)’은 그래도 한문 어구로 그 표현을 수식했다.- 김만중,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 : 강가 하늘 아래.

* : 띠로 지붕을 이은 초가집.

* 밤듕: 밤중쯤.

* : 벽 가운데 달린 등불. ‘靑燈은 본디 청사등롱이나, 여기서는 푸른 등불의 뜻.

* : 마음이 초조하여 허둥거리며.

* 바니니: 부질없이 왔다 갔다 하니.

* : 실컷.

* : 사뢰려고.

* 바라: 곁 따라. 연달아.

* 오뎐된: 방정맞은.

* 결의: 잠결에.

* 여디여: 죽어져서.

각시님 이야니와 구비나 되쇼셔.: 각시님, 달은 그만두고, 궂은 비나 되십시오. 차라리 슬픈 눈물을 임께 전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함.

람이야 믈결이야 어둥졍 된뎌이고.

샤공은 어가고 븬 만 걸렷.

텬의 혼쟈 셔셔 디  구버보니

님다히 식이 더옥 아득뎌이고.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등은 눌 위.

리며 헤며 바니니

져근덧 야 픗을 잠간 드니

셩이 지극의 님을 보니

 얼굴이 반이나마 늘거셰라.

의 머근 말

눈믈이 바라 나니 말인들 어이

졍을 못다야 목이조차 몌여

오뎐된 셩의 은 엇디 돗던고.

어와, 로다. 이 님이 어간고.

결의 니러 안자 창을 열고 라보니

어엿븐 그림재 날 조 이로다.

하리 싀여디여 월이나 되야이셔

님 겨신 창 안번드시 비최리라.

각시님 이야니와 구비나 되쇼셔.

 

- “송강가사

 

 

 

정철 (鄭澈, 1536~1593)

조선 시대의 문신(文臣). 호는 송강(松江). 뛰어난 가사와 시조 작품을 남겨 윤선도(尹善道)와 함께 우리 고전 시가 문학의 쌍벽으로 평가받는다. 문집에 송강집(松江集)”송강가사(松江歌辭)”가 있다.

 

작품 해제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속편으로 가사 문학 중 우리말 표현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여인의 대화를 통해 전개되는 형식이 특징적이다. ‘한 여인(갑녀)의 질문-주인공인 다른 여인(을녀)의 답변-갑녀의 위로-을녀의 하소연-갑녀의 조언으로 전개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첫 부분에 나오는 갑녀의 질문은 을녀의 하소연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을녀의 하소연은 님과 헤어져 외롭게 지내는 처지를 토로하는 것이다. 갑녀는 을녀의 하소연을 듣고 공감하고 위로한다. 제목의 미인(美人)’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가가기

1 오늘날 미인의 뜻과 이 작품의 제목에 쓰인 미인의 뜻을 비교해 보자.

 

 

새겨읽기

1 이 작품을 갑과 을 두 여인의 대화로 볼 때, 아래의 (1)~(5)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보자.

(1) 갑의 질문 (2) 을의 답변 (3) 갑의 위로 (4) 을의 하소연 (5)갑의 조언

 

도움말

화자의 시야를 가리는 것들과 길을 막는 것들을 찾아보자.

2 위의 ‘(4) 을의 하소연, 임을 보고 싶어 하는 의 애타는 마음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찾아보자.

 

 

3 마지막 행의 궂은 비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화자가 각시님 이야니와 구비나 되쇼셔.’라고 말한 까닭을 설명해 보자.

 

 

자료 검색

남성 작가

여성 화자

충신연주지사와 여성 화자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辭)와 여성 화자 _ 이 작품과 사미인곡충신연주지사라 한다. 충성스런 신하가 조정에서 쫓겨나서도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라는 뜻이다. 정철은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에 속해 있었고, 당쟁으로 인해 관직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두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류의 노래로는 고려 시대의 정과정곡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과 사미인곡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신하가 사연을 토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성이 그 애절한 심정을 하소연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특수한 것임에 비해 남성과 여성의 애정 관계는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이 하소연하는 방식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 효과적이다. 이처럼 남성이 자신의 사연을 토로할 때 여성 화자를 내세우는 것을 우리 문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정서의 정과정곡이나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4 이 작품이 여성을 화자로 한 충신연주지사라는 것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의 화자가 여성임을 알 수 있는 호칭을 찾아보자.

 

(2) 이 작품이 남성 신하가 임금에게 직접 하소연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면, 그 느낌과 효과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지 말해 보자.

연결 짓기

다음은 중국 시인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의 중간 부분과 끝 부분이다. 화자의 성(), ‘에 대한 화자의 태도 측면에서 속미인곡과 비교해 보자.

(전략)

앞뒤로 분주히 달리며

선왕(先王)의 발자취 잇게 하렸더니

이내 마음 살펴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참소(讒訴)만 믿고 벌컥 화내시네.

바른말이 이 몸에 화 될 줄 알지만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맹세코자 하늘이 아시리,

오직 임 때문임을.

당초에 내게 약속하시더니

나중에 돌아서서 딴마음 가지실 줄이야.

나야 이별이 어렵지 않지만

임의 잦은 변덕 가슴 아파라.

(중략)

모든 것 다 끝났어라.

나라에 사람 없어 날 알아줄 이 아무도 없는데

어이 고국을 그리워하리.

좋은 정치 함께할 사람 없으니

나는 장차 팽함 계신 곳을 찾아가리.

* : 원문은 영수(靈修). ()이나 임금을 가리킴.

* 팽함(彭咸): 중국 은()나라의 충신. 임금을 간()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 굴원, ‘이소(離騷)’에서

 

 

표현하기

도움말

한국 가사 문학관 http://www.gasa.go.kr/

한국 가사 문학관 누리집을 방문하여 속미인곡의 원문을 찾아 읽어 보자. 그리고 원문을 읽은 느낌을 교과서에서 이 작품을 읽을 때의 느낌과 비교하여 해당 누리집 의견란에 남겨 보자.

욕된 삶을 살아온 것을 참회하고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즐거운 날을 열고자 하는 순결한 청년의 다짐을 노래한 시이다. 자기 성찰의 내용과 태도에 주목하여 읽어 보자.

 

02 참회록(懺悔錄)

윤동주(尹東柱)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참회(懺悔):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침.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명동촌 출생. 일본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학과 재학 중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옥사하였다. 해방 뒤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시인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운석(隕石): 대기 중에 돌입한 유성(流星)이 다 타 버리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을 가리킴. 그러나 여기서는 유성의 의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미 지구 상에 떨어진 운석 밑을 걸어갈 수는 없기 때문임.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작품 해제

윤동주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끄러움의 정서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순결한 영혼을 지닌 청년 윤동주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여 청춘의 기쁨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할 때에도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도 이러한 자기 성찰의 과정에서 생긴 부끄러움의 정서가 담겨 있다. 널리 알려진 작품 별 헤는 밤에 나오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곧 윤동주 그 자신이었다.

다가가기

1 화자는 자신의 지난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2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에서 받은 느낌을 말해 보자.

 

 

새겨읽기

1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참회록이 나온다. 다음 빈칸에 참회록의 내용을 써 보자.

과거 현재 미래

 

 

2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3 화자의 치열한 자기 성찰의 태도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연을 찾아보자.

 

 

자료 검색

거울의 속성

거울의 상징적 의미

거울을 소재로 한 시

거울의 의미 _ 녹이 낀 거울 속에 남아 있는 욕된 얼굴-참회-거울 닦기로 진전되는 이 시는 자아 성찰의 단계를 밟아 부끄러움과 오욕의 삶을 씻고, 맑고 밝은 삶의 길로 정진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4 ‘거울은 화자의 자아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 볼 수도 있고, 화자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각각의 경우, 4연의 거울 닦기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연결 짓기

다음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다.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자화상’: 자기 얼굴을 그린 그림을 뜻하는데, 이 시에서는 언어로 그린 자신의 모습이란 뜻으로 쓰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自畵像)’

 

(1) ‘참회록의 화자와 자화상의 화자가 자신에 대해 갖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두 감정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2) 위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금 현재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표현하기

각자의 구리거울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그 모습을 표현하여 다음 시행을 완성해 보자.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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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보리타작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노래한 한시이다. 양반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인식되었던 농민을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와, 노동의 즐거움을 맘껏 즐기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화자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어 보자.

 

01 보리타작打麥行

정약용(丁若鏞)

송재소 옮김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新蒭濁酒如涷白(신추탁주여동백)

* 한 자: 일 척. 30cm 가량.

* 도리깨: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농구.

* 보이느니: 보이는 것이.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大碗麥飯高一尺(대완맥반고일척)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飯罷取耞登場立(반파취가등장립)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雙肩漆澤日赤(쌍견칠택번일적)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呼邪作聲擧趾齊(호야작성거지제)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須臾麥穗都狼藉(수유맥수도랑자)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雜歌互答聲轉高(잡가호답성전고)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 티끌뿐이로다. 但見屋角紛飛麥(단견옥각분비맥)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觀其氣色樂莫樂(관기기색락막락)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了不以心爲形役(료불이심위형역)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樂園樂郊不遠有(락원락교불원유)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何苦去作風塵客(하고거작풍진객)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정약용 (丁若鏞, 1762~1836)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문인.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與猶堂). 18세기에 개화 발전한 초기 및 중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고 발전시켰으며, 민족의 삶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을 썼다.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 활동을 했는데, 대표작으로는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이 있다.

 

작품 해제

원제는 타맥행(打麥行)’으로, 한시의 ()’ 양식을 사용하여 보리타작을 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농민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자아 성찰에 나아가는 화자의 진지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다가가기

1 이 시의 등장인물은 누구누구인지 말해 보자.

 

 

2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새겨읽기

1 보리타작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을 그리고 있는 두 행을 찾아보자.

 

 

2 다음 두 행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화자의 태도를 설명해 보자.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도움말

노동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과, 화자의 깨달음이 드러난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3 이 시를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도움말

벼슬아치로 사는 자신의 삶을 벼슬길에 헤매고있다고 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4 보리타작하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이 시의 화자가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연결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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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한시 세계

보리타작의 화자

김홍도의 그림 벼 타작의 구도

다산(茶山) 시의 현실 비판 _ 다산의 한시는 농민을 비롯한 평민들을 옥죄는 사회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부패한 관리나 토호들의 횡포를 고발하였으며, 평민들의 생활 속에서 발견한 참된 삶의 모습을 예찬하였다. 이런 비판, 고발, 예찬의 문학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다산이 당시의 엄격한 신분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근대적인 평등 의식에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었지만, 양반들의 낡은 신분 의식과는 구별되는 진보적인 신분 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도움말

벼 타작은 김홍도가 그린 단원 풍속도첩중 하나이다. 왼쪽 부분에는 일꾼들이 볏단을 메어치는 장면을 배치하였고, 오른쪽 부분에는 이를 감독하는 사람을 그려 넣었다.

다음 그림에서 갓 쓴 사람은 농민들을 감독하고 있다. 갓 쓴 사람과 보리타작의 화자가 농민에 대해 지닌 태도를 비교하여 말해 보자.

김홍도, ‘벼 타작

 

 

 

 

표현하기

다음은 보리타작할 때 부르는 노동 민요 옹헤야의 일부이다. 모둠을 나누어 연습해서 옹헤야 경연 대회를 열어 보자. 보리타작하는 농민처럼 몸을 움직이면서 노래 부를 때의 느낌과 눈으로 노랫말을 읽기만 할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보자.

옹헤야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저절시구 옹헤야 잘도 한다 옹헤야

에헤헤헤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잘도 한다 옹헤야

철뚝 넘어 옹헤야 메추리란 놈이 옹헤야 보리밭에 옹헤야 알을 낳네 옹헤야

앞집 금순 옹헤야 뒷집 복순 옹헤야 서로 만나 옹헤야 정담헌다 옹헤야 (후략)

이 작품은 지식인인 서술자가 떠돌이 노동자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지식인의 타자 이해에 주목하여 읽어 보자.

 

02 고향(故鄕)

현진건(玄鎭健)

 

* 옥양목(玉洋木):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 빛이 희고 얇음.

* 유지(油紙): 기름종이.

* 피륙: 아직 끊지 아니한 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감발: 발감개. 또는 발감개를 한 차림새.

* 고부가리: 일본어. 머리를 5(1.5cm) 길이로 깎음. 또는 그 머리.

* “도꼬마데 오이데 데수까.”: 어디까지 가십니까?”의 뜻.

* 대판(大阪): ‘오사카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

* 뉘엿거린다: 속이 메스꺼워 자꾸 토할 듯하다.

* “소오데수까.”: “그렇습니까?”의 뜻.

* “니쌍나올취”, “니씽섬마.”: 어디까지 가십니까?”, “누구십니까?”의 뜻.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 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 말로 곧잘 철철대이거니와 중국 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꼬마데 오이데 데수까.” 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동경이 어떠니 대판이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곤지 손가락으로 짜르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까땍까땍하는 고개와 함께 소오데수까.”란 한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한다. “니쌍나올취”, “니씽섬마.”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띄울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에라도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현진건 (玄鎭健, 1900~1943)

소설가. 신문기자로 일하며 소설을 썼다. 갈수록 황폐화되는 당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술 권하는 사회’, 고향’, ‘운수 좋은 날등으로 1920년대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했으며, ‘흑치상지’, ‘무영탑등의 역사 소설을 통해 한민족의 주체성을 고취하였다. “조선의 얼굴”, “무영탑”, “적도”, “흑치상지등의 저서를 남겼다.

* 주적대는: 주책없이 잘난 체하며 자꾸 떠드는.

* 어쭙잖고: 비웃음을 살 만큼 언행이 분수에 넘치는 데가 있고.

* 기진야도: 노동자 합숙소를 뜻하는 일본어.

* 겅성드뭇: 많은 수효가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모양.

* 소태: 소태나무의 껍질의 준말. 약재로 쓰는데 맛이 아주 씀.

* 신산스러운: 보기에 사는 것이 힘들고 고생스러운 데가 있는.

* 미주알고주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그것은 마치 짐승을 놀리는 요술쟁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 꼴이 어쭙잖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오.”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오?”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꾼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오?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였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 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조이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십 년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오.”

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재우쳤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 역둔토(驛屯土): 역토(역에 딸린 땅)와 둔토(지방에 주둔하는 군대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땅)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사삿집: 개인이 살림하는 집.

* 동양 척식 회사: 1908년에 일본이 한국의 경제를 독점착취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책 회사. 주로 토지를 강점, 강매하여 높은 비율의 소작료를 징수하고 많은 양곡을 일본으로 반출하다가,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 패전하면서 문을 닫음.

* 실작인(實作人): 실제로 농사짓는 소작인.

*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서간도(西間島): 백두산 부근의 만주 지방으로 압록강 너머 지역이 이에 해당함.

* 신신(新新)하랴: 생기가 돌고 새로워지겠는가.

* 전야(田野): 논밭으로 이루어진 들.

* 이태: 두 해.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나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의 삼 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 갔다.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 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를 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라 무슨 행세로 적어도 일 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 가는 중 사 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꺼정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 죽 한 모금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그의 눈이 번들번들함은 눈물이 쏟아졌음이리라.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 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 악착한: 일을 해 나가는 태도가 매우 모질고 끈덕진.

* 안동현(安東縣): 지금의 단동(丹東)으로, 중국 랴오둥 반도에 있음.

* 구주(九州): ‘규슈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

* 주접(住接): 한때 머물러 삶.

* 주추: 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의 물건.

나는 그 ~ 본 듯싶었다.: ‘가 고향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의 모습에서 주권을 잃은 조선과,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조선인의 어둡고 비참한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음을 의미함.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뭐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구 년 동안이면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 그렇구마. 무너지다가 담만 즐비하게 남았더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겠는기오.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더마. 사람 살던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 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십 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 유곽(遊廓): 많은 창기를 두고 영업을 하는 집. 또는 그런 집이 모여 있는 곳.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시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 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

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해진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구마.”

!”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이나 하구마.”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 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었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 사이에 혼인 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비 되는 자가 이십 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처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이십 원 몸값을 십 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육십 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고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십 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십 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 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 궐녀(厥女):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여자를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

* 유산(硫酸): 황산. 무색무취의 끈끈한 불휘발성 액체.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더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따라 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이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낸 슬픔을 새록새록이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야기를 다 하면 무얼 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내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 물이 났다.

,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 “조선의 얼굴

 

 

 

작품 해제

이 작품은 처음 조선일보에 발표되었다. 발표 당시 제목은 그의 얼굴이었는데, 작품집 조선의 얼굴(1926)에 실리면서 고향으로 바뀌었다. 작품집의 제목 조선의 얼굴,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에서 온 것이다. 일제의 수탈로 농토를 잃고 막노동자가 되어 동양 삼국을 떠도는 인물과 지식인의 기차 속 대화를 통해 당대 현실을 압축적으로 반영하였다.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신민요 아리랑은 소설의 주제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다가가기

1 이 소설에 나오는 의 말은 어느 지역 방언인가?

 

 

2 첫인상에 사로잡혀 어떤 사람을 오해했던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자.

 

 

새겨읽기

1 이 소설의 가 걸어온 삶의 길을 정리해 보자.

고향에서 농사 지음

 

 

일자리를 찾고 있음

 

2 ‘의 남다른 옷차림과 3개 국어를 섞어 쓰는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말해 보자.

 

도움말

소설 속 인물의 심리는 그가 처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3 다음에서 알 수 있는 의 심리 상태는 어떠한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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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지식인

일제 강점기의 민중

와 노동자의 관계

고향에 나타난 민중지식인의 만남 _ 현진건의 소설은 지식인민중이질적인 만남과 교감을 통해, 민족의 얼굴을 발견하는 과정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고향에서 노동자 는 민중이다. ‘의 서울행은 단순히 정해진 목적를 향한 여행이 아니며, 그가 겪어 온 유랑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유랑은 제국주의 권력에 의해 떠밀린 피식민자의 경험인 것이다. ‘는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인 지식인이다. ‘가 처음 에게서 느낀 이질감은 유랑자와 내국인, 그리고 민중과 지식인의 성격 차이에서 연유했다고 볼 수 있는데, ‘고향사이의 이질감이 동질감으로 바뀌는 것을 그리고 있다.

 

4 ‘에 대한 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이 작품은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시이다. 한국 사회의 의제 가운데 하나인 민주주의 실현의 문제에 주목하여 감상해 보자.

 

01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金芝河)

 

* 신새벽: 날이 새기 시작하는 새벽.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金芝河, 1941~ )

시인. 한국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80년대 중반 이래 생명 문제를 깊이 천착하는 시와 비평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저서에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대설(大說)”, “애린 1. 2”, 비평집 김지하 사상 전집등이 있다.

작품 해제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압축해 놓은 시로 독재 정치에 맞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시적 화자의 분노, 자유에 대한 갈증과 그리움 등이 어우러져 민주 사회에 대한 열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다가가기

1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자유롭게 말해 보자.

 

 

새겨읽기

1 이 시에는 타는이 여러 번 나온다. 그 함축적 의미를 설명해 보자.

 

 

2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시대 상황이 드러나 있는 행을 모두 찾아보자.

 

 

3 다음 구절에 쓰인 표현 기법은 무엇이며, 담겨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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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미

화자의 태도

작품의 미적 특질

비장미(悲壯美) _ 비장(悲壯)이라는 단어는 슬플 ()’와 씩씩할 ()’이 합쳐 만들어진 것으로 사전에는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하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풀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단어는 주로 패배를 각오하고 어떤 일에 씩씩하게 나아가는 태도, 모습 등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비장미는 이런 사람의 태도 또는 모습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패배할지도 모르니 슬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니 숭고하다. 그래서 비장미 속에는 숭고미(崇高美)도 들어 있다.

 

도움말

이 시가 발표된 19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큰 용기 없이는 가능하지 못했다.

4 이 시에서 비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를 화자의 태도와 관련지어 설명해 보자.

이 작품은 남성 중심주의와 여성 차별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생명 경시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양성평등의 문제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읽어 보자.

 

03 꿈꾸는 인큐베이터

박완서(朴婉緖)

 

<앞부분의 줄거리>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는 지극히 평범한 전업주부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의 연극 공연을 보러 유치원에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남자는 두 딸의 아버지인데 아들이 없어도 불행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남자는 사람들의 의식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남아 선호 사상을 비판하며, 딸이라 하여 낙태 수술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녀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이 그녀로 하여금 세 번째 아이가 딸이라 하여 임신 중절 수술을 했던 일을 돌아보게 만든다.

 

* 인큐베이터(incubator): 보육기. 미숙아나 출생 때 이상이 있는 아기를 넣어서 키우는 기기(機器).

* 살의(殺意):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

* 양수(羊水): 양막 안의 액체. 태아를 보호하며 출산할 때는 흘러나와 분만을 쉽게 함.

단지 딸이기 때문에 없애러 가는 길을 남편이 정말 눈치 못 챘는지, 왜 의논이라도 한마디 해 볼 생각을 안 했는지, 그 언저리는 나도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가 없다. 확실한 건 그땐 나도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살의가 옮아 붙은 것처럼, 양수 검사에서 딸로 판명되면 없앨 수밖에 없으리라고 일찌거니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순순히 양수 검사를 당했을 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할 만큼 무력해지기까지는 시누이의 공이 컸다. 시누이는 가장 친한 친구인 척 소곤소곤 아들 낳고 먹는 미역국과 딸 낳고 먹는 미역국 맛이 얼마나 다르더라는 얘기를 내 귀에 독처럼 불어넣었다. 그녀는 아들딸 남매를 두고 있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도 시누이는 어디서 알아내 왔다.

박완서 (朴婉緖, 1931~ )

소설가. 대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나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1970년 마흔 살 늦은 나이에 장편 소설 나목(裸木)’으로 등단한 뒤 분단 문제, 여성 문제, 가정 문제 등을 다룬 많은 작품을 발표한 다작의 작가이다. 주요 저서에 소설집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나 쓸쓸한 당신등과 장편 소설 나목()’, ‘미망(未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등이 있다.

우리를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멋쟁이에다 덕망이 있는 인사로 세상에 알려진 교수 한 분이 상처를 했다.

* 상처(喪妻): 아내의 죽음을 당함.

* 비수(匕首): 날이 예리하고 짧은 칼.

* 구옥(舊屋): 옛집.

* 이태: 두 해.

* 출가외인(出家外人): 시집간 딸은 친정 사람이 아니고 남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 양놈: 서양 사람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덕망 있는 멋쟁이가 흔히 그렇듯이 소문난 애처가였다. 나도 여성지 컬러 면에서 곱게 늙은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어서 친척의 죽음보다 더 애도하는 마음이 애틋하더랬다. 그분이라면 아마 생전 재혼도 안 하고 오직 부인의 추억 속에서만 살겠지, 그런 기대는 감미롭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달도 안 돼 시누이가 오도방정을 떨며 전해 준 소식통에 의하면 교수님은 벌써 재혼을 해서 깨가 쏟아지게 사는데 놀랍게도 사모님 생전부터 10여 년이나 그늘에 살던 여자라는 것이었다. 두 분 사이엔 딸만 둘 있었는데 그 여자가 낳은 아들은 벌써 중학생이고 교수님을 빼닮아 준수하더라는 대목에서 시누이의 눈빛은 비수처럼 나를 가르고 지나갔다. 나는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그 후에도 시누이는 그 댁 이야기라면 왜 그렇게 자세히 아는 것도 많고 신이 나 하는지. 사모님은 그걸 모르고 돌아가신 게 아니라 실은 감춰 놓은 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그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암으로 발전해 죽음에 이르렀다고도 했다. 들을수록 소름 끼치는 얘기였다.

시어머니가 부쩍 아들 손자 타령을 하게 된 것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갑자기 재산가가 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시집갔을 때 시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워 계셨다. 살림은 오래되고 불편한 구옥을 방방이 세를 놓아 근근이 꾸려 가는 형편이어서 장남을 데리고 살 엄두도 안 냈다. 낡았지만 대지는 넓은 서대문 밖 집 앞으로 시아버님의 사후 갑자기 큰길이 나면서부터 시어머니한테는 재복이 붙기 시작했다. 빚을 내고, 미리 전셋돈을 받아내 가며 빌딩을 올릴 때만 해도 위태위태해 보이더니만 시절을 잘 타 전세금이 이태도 안 돼 사글세 보증금 정도밖에 안 되게 화폐 가치가 떨어졌다. 혼자가 된 후, 집 하나 가지면 너희들 신세 안 지겠노라고 집을 자기 명의로 해 가진 시어머니는 그때부터 호기 있고 당당해지면서 거침없이 아들 손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기회만 있으면 아들을 붙들고, 내 딸이나 네 딸이나 딸은 소용없는 출가외인이니 그까짓 것들은 칠 것도 없고, 맏이 너한테서 영 아들 손자를 못 보면 양놈 다 된 둘째라도 불러들여야 할까 보다는 소리를 의논처럼 한탄처럼 하곤 했다. 남편 밑의 시동생은 집안이 한참 어려울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영주권도 얻고 그럭저럭 거기서 발붙이고 사는 모양이지만 보고 온 남편 말에 의하면 온 식구가 나서서 벌어야 사는 영세한 장사꾼인 모양이었다. 그들이라도 불러들이겠다는 말이 남편에게 얼마나 위협적이고 모욕적이라는 걸 나는 옆에서 안 느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빌딩이 무슨 왕권이나 되는 것처럼 대를 이을 든든한 아들 손자가 없는 집엔 지고 갈지언정 물려주지 않을 뜻을 거듭거듭 강조했다. 대를 잇는다는 건 핏줄도 성도 아니고 결국은 상속권이었다.

딸을 지우기 위해 가랑이를 벌리고 수술대에 누울 때도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곁에 붙어 있었다. 지극 정성이었다. 나는 그들이 확인 사살을 위해 지키고 있는 사람들처럼 무서웠다. 그들은 양쪽에서 내 손을 잡고 뭐라고 위로의 말을 했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기로 작정한 건 아들을 낳고 나서가 아니라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곧 스러질 생명에 대해 에미가 바칠 수 있는 애도는 그것밖에 없었다. 마취가 듣고 하나 둘을 세면서 의식이 멀어져 가는 중에도 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얼굴을 망막에 새겨 두려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 홍소(哄笑):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떠들썩하게 웃음. 또는 그 웃음.

인큐베이터 속에서 내 아기가 꼼실대고 있었다. 손가락만 한 아가였다. 너는 엄지 아가씨로구나. 가엾어라. 불면 날아가게 생겼네. 인큐베이터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누가 훔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졸음이 와서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프지 않아서 이상했다. 그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투실투실한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 안이 가득해졌다. 시어머니가 그들에게 그 큰 애를 넣기 위해 우리 엄지 아가씨를 내보내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안 돼요. 그 애는 그 애는 그 안에서 나오면 당장 스러지고 말 거예요. 나는 소리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돼 나오지 않았다. 검은 옷 입은 사람하고 흰 옷 입은 사람하고 저희들끼리 흥정을 했다. 얼마 주면 엄지 아가씨를 내쫓고 그 아이를 넣어 주겠냐는 흥정 같았다. 사람들은 악마처럼 웃으며 액수를 자꾸 올리고 나는 그 짓을 말려야겠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몸도 안 움직여지고 말도 안 나왔다. 그러다 보니 인큐베이터 속의 엄지 아가씨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슬처럼 사라졌구나. 나의 슬픔엔 아랑곳없이 방 안이 사람들의 무례한 홍소로 가득 찼다. 나는 내 몸이 그 거친 웃음소리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들들들 진동하는 걸 느꼈다. 뛰어내릴 수 있는 거라면 뛰어내리고 싶었다. 속이 온통 메슥거렸다. 그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점점 사람의 소리 아닌 걸로 변하더니 자갈밭 위를 지나가는 쇠바퀴 소리가 됐다. 그런 소리는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다. 쇠바퀴 소리가 뇌수로 파고드는 것 같아 나는 귀를 틀어막으려고 몸부림쳤다.

미는 침대에 실려 회복실로 가고 있었다. 아가 괜찮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굽어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또 동체를 떠나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기괴해 보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요다음 임신에 지장이 없

겠느냐고 시어머니가 의사한테 묻는 소리가 들렸다.

* 소파(搔爬) 수술: ‘긁어냄술의 전 용어. 자궁의 속막을 긁어내는 수술. 자궁 속막의 병을 치료하거나 유산을 하였을 때 자궁 속의 내용물을 긁어내기 위해서 하며, 인공 유산을 시키기 위해서도 함.

* : 머리 위에 인 물건. 또는 머리에 일 만한 정도의 짐.

내 귀에는 그 소리가 고장 난 음반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일그러진 채 마냥 반복해서 들렸다. 태아는 소파 수술로 제거하기에 적당한 날짜가 지나 좀 어려운 수술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서 그렇게 다음 임신을 걱정했구나. 나는 하염없는 마음으로 내가 인큐베이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수락했다.

시어머니가 달여 바친 보약의 효험이었던지 다음 임신이 빨리 되고 다시 양수 검사를 받았다. 또 딸이더라도 소파 수술을 거부해서 그들에게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리라는 뜨겁고 야무진 각오로 그 지겨운 검사에 다시 임했던 건데 아들이라고 했다. 낳기도 전에 축하를 받고 위함을 받았다. 아들을 낳았지만 그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정열은 식지 않고 계속됐다.

 

차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학교 갔다 오는 듯한 소년들이 네댓 명이나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꼼짝 않고 운전대에 엎드려 있는 여자를 이상하게 여긴 듯했다. 나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빙그레 웃어 보였다. 볼이 이글이글 붉은 소년들도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이 씩 웃고 멀어져 갔다. 저만치서 머리에 임을 인 아낙이 걸어오고 있었다. 요즈음 도시에선 머리에다 뭘 이고 다니는 풍경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달랑무 줄거리 같은 게 몇 가닥 늘어진 커다란 광주리를 인 여자가 차 옆을 지나갔다. 여성지에서 본 매력적으로 걷는 법에 의하면 정수리와 양쪽 귀를 위에서 수직으로 땡기는 것처럼 머리를 곧바로 치켜들고 걸으라고 돼 있다. 지금 임을 인 여인의 자세가 바로 그렇지 않은가. 머리에서 무거운 게 찍어 누름으로써 도리어 빳빳이 세울 수밖에 없는 여인의 모습을 나는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직선이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당당하다 못해 존엄한 걸음걸이였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친정어머니는 남편이란 머리에 인 임과 같은 것이라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나는 내가 본 어머니 아버지의 부부 관계로 미루어 그 소리를 남편은 아내를 어떡하든 찍어 누르고 머리 위에 군림하려는 존재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였었다. 그런 뜻도 있겠지만 거기 덧붙여 그 찍어 누르는 존재에 의해서만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는 여자 팔자를 빗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어머니다운 발상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생전 어려워만 하며 살았다. 당신도 집 안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면서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 오는 넉넉지 않은 생활비를 황송해했고 자기는 거저 얻어먹는 것처럼 비하했다.

* 비하(卑下): 업신여겨 낮춤.

* 층하(層下): 다른 것보다 낮잡아 보아 소홀히 대접함. 또는 그런 차별.

* 오금: 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

* 해산구완: 해산바라지. 해산을 돕는 일.

아들 둘, 딸 둘, 사 남매한테도 아버지는 손님처럼 어렵게 굴었지만 아들 딸을 층하해서 대하는 것 같진 않았다. 공평하게 무심했다고나 할까. 어머니가 되레 아버지 앞에서 딸들은 오금을 못 펴도록 가르쳤다. 상에서 반찬도 못 집어먹게 했고, 아버지한테 아들 등록금을 타낼 때는 그리도 떳떳하게 굴던 어머니가 딸들 등록금을 타낼 때는 그지없이 비굴하고 조마조마한 표정을 했다. 타낸 걸 건네줄 때도 아버지한테 미안해서 혼났다는 소리를 꼭 덧붙였다. 아들 장가보낼 때는 사돈한테 점잖고 품위 있게 굴던 어머니가 딸 시집보낼 때는 꼭 무슨 흠이라도 있는 자식을 남의 집에 속여서 들여보내는 것처럼 위축되고 비굴하게 굴어서 나를 속상하게 했다. 더 속상한 건 내가 딸을 낳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껏 해산구완 다하고서도 사위나 사돈한테 꼭 죄인처럼 구는 거였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게 어디 시켜서 되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내가 동생이 첫아들을 낳았을 때 너무도 좋았던 것은 어머니가 그런 억울한 해산구완을 안 해도 되겠기 때문이었다. 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 시어머니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남편하고 나하고는 정말이지 손톱만큼도 섭섭한 마음이 없었다. 세상에 우리만 자식 낳아 본 것처럼 자랑스럽고 신기한 것 천지였다. 친정에서 산후 조리를 하는 동안 남편도 아기가 보고 싶어 처가에서 출퇴근을 했다. 남편 앞에서 아기 기저귀를 가는 건 예사였고 남편에게 기저귀를 갈아 달랠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그걸 본 어머니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질색을 하더니 나중에 사위 못 듣는 데서 야단야단치시는 것이었다.

아니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남편한테 어떻게 계집애 아랫도리, 그 흉한 걸 보이냐, 보이길.”

아들은 괜찮구요?”

여부가 있냐? 고추 달린 아랫도리야 남편 앞에 여봐란듯이 풀어놔야지.”

우리 기를 때도 어머니는 그랬었구나. 그건 물어보나 마나였다. 그건 아무도 못 말린 어머니의 버릇, 아니 도덕관념이었다.

내가 나의 인큐베이터 됨을 참아 낼 수밖에 없었던 소인은 그러니까 기저귀 찰 때부터 비롯됐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어떡하든지 달라져야 한다. 남편도 나도. 이건 사는 게 아니다. 그렇게 간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그 께름칙함을 떨쳐 버리지 않는 한 생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차에서 내려 다시 한 번 강바람을 들이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차도로 나왔으나 좌회전을 하지 못해 돌아가야 할 도시를 뒤로 하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유턴 지점이 있겠지, 유턴 지점을 열심히 찾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그렇게 믿으며 상쾌한 속도를 냈다. 도시와 더불어 내 집 또한 뒤로 뒤로 멀어져 가는 기분 또한 상쾌했다.

 

- “박완서 소설 전집 7”

 

 

 

 

 

작품 해제

1993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로 그해 38회 현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당시 한국 사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였던 남아 선호 사상의 문제를 낙태라는 반생명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깊이 다룬 작품이다. 낙태 수술의 경험을 가진 여성 주인공은 한국 사회의 남아 선호 사상을 비판하는 한편, 남아 선호 사상을 지닌 주변 사람들의 강제를 뿌리치지 못하고 낙태 수술을 했던 자신을 비판한다. 이 같은 비판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다가가기

1 ‘의 가족 관계를 정리해 보자.

 

 

2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해 들어 본 경험을 떠올려 보고,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

 

 

 

새겨읽기

1 시어머니가 부쩍 손자 타령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 보자.

 

 

2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한 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자.

 

도움말

남아 선호 사상: 남아 우위의 차별적 성 관념. 아들을 낳아야 대()를 이을 수 있고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실 수 있다고 하여 딸보다는 아들을 낳기 바라는 것.

 

3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한 친정어머니의 생각을 각각 정리해 보자.

친정어머니의 생각:

의 생각:

 

 

 

4 주인공인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어떡하든지 달라져야 한다.’라고 하여 변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주인공을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기만 할 뿐 이처럼 변하겠다고 다짐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인물로 그릴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인물을 설정했다면 이 작품의 주제가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을지, 그렇지 않았을지 토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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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베이터의 작품 속 의미

인큐베이터의 사전적 의미

꿈꾸는 인큐베이터의 주제

인큐베이터 _ 체중 2kg 이하의 미숙아(未熟兒)와 호흡 장애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신생아를 수용하는 산소 공급기가 달린 기기(機器)이다. 두꺼운 플라스틱제가 많으며, 밖에서 관찰할 수 있게 무색투명하다. 인큐베이터는 미숙아에게 아기집과 비슷한 환경을 제시함으로써 정상적인 아기로 양육하는 기기라는 점에서 과학이 인간에게 준 경이로운 선물이라 할 수 있다.

 

 

 

5 이 작품의 제목인 꿈꾸는 인큐베이터가 뜻하는 바를 인큐베이터의 사전적 의미와 대비하여 설명해 보자. 그리고 이와 같이 인큐베이터를 본래의 뜻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지 말해 보자.

 

 

 

연결 짓기

다음은 수필의 한 부분으로 한국 남자들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남아 선호 사상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토론해 보자.

우리 아버지가 어릴 때 나를 보고 혼잣말로 무어라고 하셨는지 아니? 글쎄, 날 두고 이 녀석은 사내아이로 태어났으면 딱 좋을 텐데!” 하시는 거야. 한두 번이면 말도 않겠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남자라 해도 남자는 남자야. 남자 위주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자들에게는 편리하기 짝이 없는 남존여비 사상을 남자들이 쉽사리 버릴 것 같아?”

- 윤구병, ‘여성다움의 덫

 

 

 

표현하기

이 작품의 주인공 의 입장에서 임신 중절 수술 때문에 태어나지 못한 엄지 아가씨의 원혼을 위로하는 편지를 써서 발표해 보자.

<유의할 점>

죄책감과 슬픔이 잘 드러나도록 한다.

심리 갈등이 잘 드러나도록 한다.

연결 짓기

다음은 해방 직후 발표된 신석정의 시 꽃덤불이다.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 시의 화자와 위 글에 나오는 장연학은 다른 태도를 보이는데 그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 신석정, ‘꽃덤불

 

 

 

 

다음 시를 읽고 자연은 인간에 대한 / 기다림을 아예 갖고 있지 않다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그러고 보면 땅이나 하늘

자연은 결코 참을성이 있는 게 아니다

산성눈 한 뼘이나 쌓인다 폭설이다

당분간은 두절이다

우뚝한 굴뚝, 은색의 바퀴들에

그렇다, 무서운 이 시대의 속도에 치여

몸과 마음의 서까래

몇 개의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쓰러져 숨 쉬다 보면

실핏줄 속으로 모래 같은 것들 가득

고인다 산성눈 펑펑 내린다

자연은 인간에 대한

기다림을 아예 갖고 있지 않다

펄펄 사람의 죄악이 내린다

하늘은 저렇게 무너지는 것이다

- 이문재, ‘산성눈 내리네

 

 

 

 

 

 

 

 

 

 

 

 

 

 

 

 

 

 

 

 

 

 

 

자연과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지향했던 옛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보여 주는 시조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읽어 보자.

 

01 십 년을 경영

송순(宋純)

 

* 초려삼간: 세 칸밖에 안 되는 작은 초가.

* : 한 칸.

* 맛져 두고: 맡겨 두고.

十年(십 년)經營(경영)草廬三間(초려삼간) 지여 내니

  간에 淸風(청풍) 간 맛져 두고

江山(강산)은 들일 듸 업스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 (宋純, 1493~1583)

조선 시대의 문신. 시인. 호는 면앙정(俛仰亭).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조에 뛰어났다. 문집 면앙집을 남겼다.

 

작품 해제

송순은 1533년에 귀향하여 정자 면앙정을 짓고 시를 지으며 지냈다. 임제·김인후·고경명·임억령 등과 교유하였는데 송순과 이들을 면앙정가단(俛仰亭歌壇)’이라고 한다. 주변의 자연과 어울려 유유자적하면서 정신을 닦는 삶을 노래한 가사, 시조, 한시 등을 지었는데 십 년을 경영는 그중의 하나이다.

다가가기

1 화자의 어조는 어떤 느낌을 주는지 말해 보자.

 

 

새겨읽기

1 중장의 맛져 두고의 주체와 객체를 말해 보자.

 

 

2 ‘십 년을 경영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도움말

물아일체는 자연과 가 하나가 된 경지를 말한다. 시조에는 화자가 자연에 동화된 삶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3 이 시조의 주제를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할 때, ‘()’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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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

안강 양동마을

강릉 선교장

담양 소쇄원(瀟灑園) _ 원림(園林)이란, 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 칸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소쇄원은 원림이다. 자연의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 곳곳에 인공을 가하여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 공간을 창출한 점에 그 미덕이 있는 것이다. 소쇄원에 처음 가 보는 사람들은 우선 길이가 50m나 되는 기와지붕을 얹은 긴 흙돌담의 아이디어에 놀라게 된. 이 담장은 외부 공간과의 차단, 내부 공간의 온화함, 자연에 가한 인간의 손길이라는 3중 효과를 갖고 있다.

 

자기 지역에서 조선 시대의 건축물을 찾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지향하는 선인들의 의식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표현하기

이 작품의 형식에 맞추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노래한 시조 한 편을 짓고, 친구들의 작품과 함께 묶어 공동 시조집을 만들어 보자.

심각한 자연 파괴의 현실을 증언하고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시이다. 이 시를 통하여 생태 문제라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의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02 들판이 적막하다

정현종(鄭玄宗)

 

 

가을 햇볕에 공기에

익는 벼에

눈부신 것 천지인데,

그런데,

, 들판이 적막하다

메뚜기가 없다!

 

오 이 불길한 고요

생명의 황금 고리가 끊어졌느니……

 

- “한 꽃송이

 

 

 

정현종 (鄭玄宗, 1939~ )

시인. 사물의 속성을 투시하여 지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생태계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시 세계를 일구어 왔다. 저서에 시집 사물의 꿈”,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견딜 수 없네등과 번역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등이 있다.

 

작품 해제

정현종은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을 많이 쓴 시인으로, ‘들판이 적막하다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온갖 곡식이 무르익어 눈부신 가을 들판에 마땅히 있어야 할 메뚜기가 없음을 문득 깨달았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메뚜기는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황금 고리라는 것, 그런 메뚜기가 없다는 것은 생태계의 정상적인 질서가 무너진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가가기

1 자연 파괴의 현실이 심각하다는 생각을 언제 해 보았는지 말해 보자.

 

 

새겨읽기

1 메뚜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2 4행의 그런데는 작품 구성상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자.

 

도움말

들판에 메뚜기가 없어 적막한 것을 불길한 고요라고 하였다.

3 ‘불길한 고요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연결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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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시

환경 파괴

생태계의 연결 고리

생태 시 _ ‘생태는 생명체가 생명을 이어 가는 데 필요한 환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연 파괴가 심각해지면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생존 문제가 절박한 현실로 다가오게 되자, 자연 파괴의 현실을 비판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지향하는 의식을 담은 시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생태 시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태 시는 생태적 위기에 대한 인식을 전제해야만 성립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나오는 생명의 황금 고리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리고 그것이 끊어져 있는 현실에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 토론해 보자.

 

 

 

표현하기

이 시를 시화(詩畵)로 꾸미고 친구들과 함께 시화전을 열어 보자.

<유의할 점>

작품 아래에 빈 종이를 마련하여 관람자들이 자유롭게 평을 적도록 한다.

농민들의 생활 예술인 농무를 소재로 한 판화와 현대 시이다. 두 작품의 공통된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감상해 보자.

 

02 문학과 미술

 

[] 농무(農舞) 신경림(申庚林)

* 꺽정이: 조선 명종 때의 의적(?~1562).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주인공.

* 서림이: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임꺽정의 참모. 후에 관군에게 붙잡혀 임꺽정을 배신한 인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 쇠전: 소를 사고파는 장.

* 도수장(屠獸場): 도살장. 고기를 얻기 위하여 소나 돼지 따위의 가축을 잡아 죽이는 곳.

* 날라리: 악기 태평소를 달리 이르는 말.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농무

 

신경림 (申庚林, 1936~ )

시인. 농촌 현실을 그린 작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노래한 작품 등을 많이 썼다. 난해시를 비판하고 독자와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쉬운 시를 주장하였다. 저서에 농무(農舞)”, “새재”, “남한강(南漢江)”,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등이 있다.

 

작품 해제

1970년대 초의 농촌 현실을 노래한 시이다. ‘근대화’, ‘경제 개발등의 구호를 좇아 급속하게 산업화되고 있던 당대 사회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암담한 현실, 절망감, (), 울분 등을 농무를 추는 농민들을 통해 그려 내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임꺽정과 서림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는 고전의 창조적 계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농민들의 몸과 마음속에 넘실대는 신명의 바탕에는 그들의 절망감, , 분노 등의 정서가 깔려 있다.

[] 춘무인 추무의(春無仁秋無義) 오윤(吳潤)

 

 

 

오윤 (吳潤, 1946~1986)

판화가. 1980년대 민중 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 미술의 전통 위에 서서 민중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목판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오윤 전집이 있다.

 

작품 해제

오윤 판화의 바탕에는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고자 하는 민중의 강한 의지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력이 놓여 있다. 그 같은 의지와 생명력을 민중들의 집단무(集團舞)를 통해 표현한 작품이 춘무인 추무의이다. 과감한 생략, 굵고 강한 선, 끊어진 듯 서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연쇄, 인물들의 힘찬 동작, 언뜻 보면 도깨비 탈과도 같은 주름살 가득한 그들의 얼굴 형상 등이 그 같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다가가기

1 [][] 두 작품에서 받은 느낌을 말해 보자.

 

 

2 []에서 농무 행렬의 앞과 뒤를 찾아보자.

 

 

새겨읽기

1 두 작품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뜻하는 바를 풀이해 보자.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춘무인 추무의(春無仁秋無義):

 

 

2 []에서 농민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정리해 보자. 그리고 그중 []에 담긴 한 순간의 장면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지 생각해 보자.

이동 경로:

학교 운동장 -

 

- 장거리 -

 

-

 

- 도수장 앞

 

가장 어울리는 곳:

 

 

3 []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판화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찾아보자.

다음은 박두진의 시 꽃구름 속에와 여기에 곡을 붙여 만든 가곡 꽃구름 속에이다. 문학 작품이 음악과 만날 때 어떤 효과가 생겨나는지에 주목하여 감상해 보자.

 

03 문학과 음악

 

[] 꽃구름 속에

박두진(朴斗鎭)

* 치위: ‘추위의 옛말.

* 주림: 주로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주리는 일.

* 움치고: ‘움츠리고의 준말.

* 쓸어지게: 쓰러지게.

 

꽃바람 꽃바람

마을마다 훈훈(薰薰)

불어오라

 

복사꽃 살구꽃

화안한 속에

구름처럼 꽃구름 꽃구름

화안한 속에

 

꽃가루 흩뿌리어

마을마다 진한

꽃향기 풍기어라

 

치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어 나온 사람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다아

까맣게 잊고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

쓸어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쓸어지게 하여라

 

 

- “문장(文章)”

 

 

 

박두진 (朴斗鎭, 1916~1998)

시인. 호는 혜산(兮山).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靑鹿派)’로 불린다. 어두운 현실을 견디며 밝게 빛날 미래를 기다리는 의지를 노래한 시를 주로 썼다. 주요 시집에 ”, “오도(午禱)”, “고산 식물(高山植物)” 등이 있다.

[]

 

이흥렬 (李興烈, 1909~1981)

작곡가, 지휘자.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봄이 오면’, ‘바위 고개’, ‘어머니의 마음’, ‘섬집 아기등을 남겼다.

 

작품 해제

꽃구름 속에는 일제 강점기 말 인문평론(人文評論)”과 함께 대표적인 문학지였던 문장(文章)” 폐간호(1941. 5.)에 발표된 작품이다. 화자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따뜻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곡 꽃구름 속에는 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것으로 1965년에 간행된 작품집 너를 위하여에 수록되었다. 박두진의 시를 노랫말로 삼았으며, 시의 주제와 정서를 잘 살린 가곡으로 평가받는다.

 

다가가기

1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언제인지 말해 보자.

 

 

2 노랫말 가운데 어느 부분이 가장 인상적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새겨읽기

1 2연의 구름처럼 꽃구름 꽃구름은 무엇을 비유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도움말

시상 전개를 고려하면 이 표현이 구름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에 유의하자.

 

2 이 시의 5연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자료 검색

노래와 시의 관계

노랫말이 된 시

가곡 꽃구름 속에

가곡 꽃구름 속에의 구성 _ “노래는 자연스러워야 하고 인간미가 풍겨야 한다.”는 작곡자의 창작관을 배경으로 한 곡이다. 곡의 형식은 자유로운 통절 형식이지, 전체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꽃바람 꽃바람 마을마다 훈훈히 불어오라로 시작되는 제1부는 약간 빠른 속도의 4분의 2박자와 마장조로 되어 있으며, 경쾌한 리듬과 화려한 악상이 전개된다.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어로 시작되는 제2부는 느린 속도의 8분의 12박자와 마단조로 되어 있는데, 1부와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로 시작되는 제3부는 다시 처음의 악상으로 되돌아가 곡의 통일성을 높인다.

 

3 이 시가 노랫말로 선택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재담을 통해 양반의 무능과 허위성을 폭로하고 비판한 민속극의 한 부분이다. 희극적 성격에 주목하여 읽어 보자.

 

01 봉산 탈춤

김진옥·민천식 구술

이두현 채록

도련님

말뚝이

샌님

서방님

 

6과장 양반춤

* 굿거리장단: 농악에 쓰는 느린 네 박자의 장단. 일반적인 굿거리와 남도 굿거리가 있으며, 보통 행진곡과 춤의 반주에 씀.

* 언청이: 입술갈림증이 있어서 윗입술이 세로로 찢어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옥당(玉堂): 홍문관(弘文館)의 별칭. 홍문관은 조선 시대에 궁중의 문서 따위를 관리하고 임금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말뚝이 (벙거지를 쓰고 채찍을 들었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양반 삼 형제를 인도하여 등장)

양반 삼 형제 (말뚝이 뒤를 따라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점잔을 피우나, 어색하게 춤을 추며 등장. 양반 삼 형제 맏이는 샌님生員, 둘째는 서방님書房, 끝은 도련님道令이다. 샌님과 서방님은 흰 창옷에 관을 썼다. 도련님은 남색 쾌자에 복건을 썼다. 샌님과 서방님은 언청이이며 샌님은 언청이 두 줄, 서방님은 한 줄이다. 부채와 장죽을 가지고, 도련님은 입이 삐뚤어졌고 부채만 가졌다. 도련님은 일절 대사는 없으며, 형들과 동작을 같이 하면서 형들의 면상을 부채로 때리며 방정맞게 군다.)

말뚝이 (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老論), 소론(少論), 호조(戶曹), 병조(兵曹), 옥당(玉堂)을 다 지내고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를 다 지낸 퇴로 재상(退老宰相)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삼 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하였소.

양반들 (합창) 이 생원이라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

말뚝이 쉬이. (반주 그친다.) 여보, 구경하시는 양반들, 말씀 좀 들어 보시오. 짤다란 곰방대로 잡숫지 말고 저 연죽전(煙竹廛)으로 가서 돈이 없으면 내게 기별이래도 해서 양칠간죽(洋漆竿竹), 자문죽(紫紋竹)을 한 발가옷씩 는 것을 사다가 육무깍지 희자죽(喜字竹), 오동수복(烏銅壽福) 연변죽을 사다가 이리저리 맞추어 가지고 저 재령(載寧) 나무리 거이 낚시 걸 듯 죽 걸어 놓고 잡수시오.

양반들 뭐야아!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소. 양반 나오시는데 담배와 훤화(喧譁)를 금하라 그리 하였소.

양반들 (합창) 훤화를 금하였다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말뚝이 쉬이. (춤과 반주 그친다.) 여보, 악공들 말씀 들으시오. 오음 육률(五音六) 다 버리고 저 버드나무 홀뚜기 뽑아다 불고 바가지장단 좀 쳐 주오.

양반들 야아, 이놈, 뭐야!

말뚝이 아, 이 양반들, 어찌 듣소. 용두 해금, , 장고, 피리, 젓대 한 가락도 뽑지 말고 건건드러지게 치라고 그리하였소.

양반들 (합창) 건건드러지게 치라네. (굿거리장단으로 춤을 춘다.)

생원 쉬이. (춤과 장단 그친다.) 말뚝아.

말뚝이 예에.

생원 이놈, 너도 양반을 모시지 않고 어디로 그리 다니느냐?

말뚝이 예에, 양반을 찾으려고 찬밥 국 말어 일조식(日早食)하고,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 님 내가 타고 서양(西洋) 영미(英美), 법덕(法德), 동양 삼국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坊坊曲) 면면촌촌(面面村村),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다 찾아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

* 법덕(法德): 법국(法國, 프랑스)과 덕국(德國, 독일).

* 비뚝한: ‘비슷한의 방언.

* 새처: ‘사처의 방언. 손님이 길을 가다가 묵는 집.

* 울장: 울타리에 박은 긴 말뚝.

* 자좌오향(子坐午向):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함. 정남향.

* 부벽서(付壁書): 벽에 붙이는 글.

* 담박녕정(澹泊寧靜): 욕심이 없어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함.

*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 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

* 용장 봉장(龍欌鳳欌): 용이나 봉을 그린 장.

* (): 물건을 넣기 위해서 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

* 두지: ‘뒤주의 방언.

* 함롱(函籠): 상자나 농.

* 반닫이: 앞의 위쪽 절반이 문짝으로 되어 있는 궤.

* 동푸루: 지명.

(중략)

생원 네 이놈, 양반을 모시고 나왔으면 새처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로 이리 돌아다니느냐?

말뚝이 (채찍을 가지고 원을 그으며 한 바퀴 돌면서) 예에, 이마만큼 터를 잡고 참나무 울장을 드문드문 꽂고, 깃을 푸근푸근히 두고, 문을 하늘로 낸 새처를 잡아 놨습니다.

생원 이놈, 뭐야!

말뚝이 아, 이 양반, 어찌 듣소. 자좌오향(子坐午向)에 터를 잡고, 난간 팔자()로 오련각(五聯閣)과 입구() 자로 집을 짓되, 호박주초(琥珀柱礎)에 산호(珊瑚) 기둥에 비취 연목(翡翠椽木)에 금파(金波) 도리를 걸고 입구 자로 풀어 짓고, 쳐다보니 천판자(天板子), 내려다보니 장판방(壯版)이라. 화문석(花紋席) 칫다 펴고 부벽서(付壁書)를 바라보니 동편에 붙은 것이 담박녕정(澹泊寧靜) 네 글자가 분명하고, 서편을 바라보니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가 완연히 붙어 있고, 남편을 바라보니 인의예지(仁義禮智), 북편을 바라보니 효제충신(孝悌忠臣)이 분명하니, 이는 가위 양반의 새처방이 될 만하고, 문방제구(文房諸具) 볼작시면 용장 봉장, (), 두지, 자개 함롱(函籠), 반닫이, 샛별 같은 놋요강, 놋대야 바쳐 요기 놓고, 양칠간죽 자문죽을 이리저리 맞춰 놓고, 삼털 같은 칼담배를 저 평양 동푸루 선창에 돼지 똥물에다 축축 축여 놨습니다.

생원 이놈, 뭐야!

말뚝이 아, 이 양반, 어찌 듣소. 쇠털 같은 담배를 꿀물에다 축여 놨다 그리하였소.

양반들 (합창) 꿀물에다 축여 놨다네. (굿거리장단에 맞춰 일제히 춤춘다. 한참 추다가 춤과 음악이 끝나고 새처 방으로 들어간 양을 한다.)

양반들 (새처 안에 앉는다.)

(중략)

생원 쉬이. (음악과 춤을 멈춘다.) 여보게, 동생. 우리가 본시 양반이라, 이런 데 가만히 있자니 갑갑도 하네. 우리 시조(時調) 한 수씩 불러 보세.

서방 형님, 그거 좋은 말씀입니다.

양반들 (시조를 읊는다.) “…… 반 남아 늙었으니 다시 젊지는 못하리라…….” 하하. (하고 웃는다. 양반 시조 다음에 말뚝이가 자청하여 소리를 한다.)

말뚝이 낙양성 십 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생원 다음은 글이나 한 수씩 지어 보세.

서방 그럼, 형님이 먼저 지어 보시오.

생원 그러면 동생이 운자(韻字)를 내게.

* 운자(韻字): 한시의 운으로 다는 글자.

* 영시 조(詠詩調): 한시를 읊는 어조로.

* 벽자(僻字): 흔히 쓰이지 않는 까다로운 글자.

* 앞총: 엄지총. 짚신이나 미투리의 맨 앞 양편으로 굵게 박은 낱낱의 울.

* 헝겊총: 신발의 앞부분에 대는 헝겊.

* 거멀못: 세간이나 나무 그릇의 금간 데나 벌어질 염려가 있는 모퉁이에 걸쳐 대는 못.

* 파자(破字):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하여 맞히는 수수께끼.

* 운고옥편(韻考玉篇): 한자의 운자(韻字)를 분류하여 풀어 놓은 사전.

* 피마자(蓖麻子): 아주까리.

* 살피: ‘살포의 방언. ‘살포는 물꼬를 트거나 막는 데 쓰는 농기구.

서방 예, 제가 한번 내 드리겠습니다. ‘, ‘잡니다.

생원 아, 그것 어렵다. 여보게 동생, 되고 안 되고 내가 부를 터이니 들어 보게. (영시 조로) “울룩줄룩 작대산(作大山)허니, 황주(黃州) 평산(平山)에 동선령(洞仙嶺)이라.”

서방 하하. (형제, 같이 웃는다.) 거 형님, 잘 지었습니다.

생원 동생 한 귀 지어 보세.

서방 그럼 형님이 운자를 하나 내십시오.

생원 , ‘잘세.

서방 아, 그 운자 벽자로군. (한참 낑낑거리다가) 형님, 한마디 들어 보십시오. (영시 조로) “짚세기 앞총은 헝겊총하니, 나막신 뒤축에 거멀못이라.”

(중략)

생원 그러면 이번엔 파자(破字)나 하여 보자. 주둥이는 하얗고 몸뚱이는 알락달락한 자가 무슨 자냐?

서방 (한참 생각하다가) 네에, 거 운고옥편(韻考玉篇)에도 없는 자인데, 그것 참 어렵습니다. 그 피마자(蓖麻子)라고 하는 자가 아닙니까?

생원 아, 거 동생 참 용할세.

서방 형님, 내가 그럼 한 자 부르라우?

생원 부르게.

서방 논두렁에 살피 짚고 섰는 자가 무슨 잡니까?

생원 (한참 생각하다가) , 그것 참 어려운 잘세. 그것은 논 임자가 아닌가?

서방 하하, 그것 형님 참 잘 맞혔습니다.

 

- “한국의 가면극

 

작품 해제

봉산 탈춤은 황해도 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탈춤의 하나로, 몸짓, , 재담, 노래 등으로 이루어진 공연 예술이다. 여기 실은 것은 1960년에 황해도 출신의 두 공연자가 구술한 것을 받아 적은 대본이다. 탈춤은 근현대 연극과 달리 배우가 대본을 외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표현을 바꾸기도 하면서 연기하는 것이므로 채록할 때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는 구비 문학(口碑文學)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양반, 파계승 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여 풍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가가기

1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을 정리해 보자.

 

 

2 양반을 풍자하는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은 누구인가?

 

 

새겨읽기

1 말뚝이가 노론(老論), 소론(少論)’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2 다음 말뚝이의 대사에 드러난 표현상의 특징과 효과를 말해 보자.

개잘량이라는 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 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 하여 말뚝이 님 내가 타고 서양(西洋) 영미(英美), 법덕, 동양 삼국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동은 여울이요, 서는 구월이라, 동여울 서구월 남드리 북향산 방방곡곡(坊坊曲曲) 면면촌촌(面面村村), 바위 틈틈이, 모래 쨈쨈이, 참나무 결결이 다 찾아다녀도 샌님 비뚝한 놈도 없습디다.

 

 

3 이 작품은 내용에 따라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음 빈칸을 메워 보자.

인물의 등장 -

 

- 새처 정하기 -

 

 

 

도움말

재담은 탈춤, 판소리 등의 공연에서 관중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구연되는 재치 있는 말을 뜻한다.

4 이 작품의 각 부분은 동일한 재담 구조를 갖고 있다. 다음 빈칸을 메워 그 재담 구조를 알아보자.

 

- 양반의 호통 -

 

- 양반의 안심 - 말뚝이와 양반의 일시적 화해

 

연결 짓기

자료 검색

조선 후기 사회상

조선 시대 역사 기록과 문학 작품

문학 작품과 역사 기록

조선 후기 신분 질서의 동요(動搖) _ 조선 후기에는 경제의 변동과 신분제의 동요 속에서 사족(士族) 중심의 향촌 질서도 변화하였다. 역사 기록을 보면 평민과 천민 중에 재산을 모아 부농층으로 등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양반 중에는 토지를 잃고 몰락하여 소작농이 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임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라서 향촌 사회 내부에서 양반이 지녔던 권위도 점차 약해졌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심미적 인식의 양식인 문학 작품과 지적 인식의 양식인 역사 기록의 차이점에 대해 토론해 보자.

논제: 문학 작품과 역사 기록의 차이점

토론 방법: 자유 토론